슈발만은 깊은 밤의 짙은 어둠을 향하여 손을 뻗었다. 얼마 전 지옥같은 고통과 함께 시야가 새까맣게 물들던 경험이 선명했다. 무언가 손끝으로 부여잡지 않으면 사위를 제대로 헤맬 수조차 없어서 저는 어쩔 수 없이 아엘로트에 의지해야만 했다. 그것이 어디에서 연유한 것인지 처음엔 까닭을 알지 못했으나, 이후 진행된 일로, 그리고 그녀를 잃게 된 뒤에 아엘로트가 이야기해주어 슈발만은 비로소 선후관계를 짐작할 수 있었다. 어둠 속 자신의 팔은 흐릿한 실루엣만 떠올라 있었다. 그 너머로 뚜렷이 핏줄이 불거져 있을 것이다. 몸 안에 그녀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마치 동생처럼 사랑스러웠나. 허나, 생각해보면 그녀는 성녀라는 이름아래 크로커스 기사단을 새로 태어나게 한 어머니와 같은 존재에 가까웠다.
그리고 크로커스 기사단이라 이름한 이들은 저의 형제와 같았다.
처음 입단하였을 때 막내둥이를 맞이한 것마냥 살갑게 맞아주던 동료들을 기억한다. 머리를 쓰다듬고, 어깨에 팔을 둘러 엉망이 되도록 살을 부볐다. 슈발만이 첫 전투에 나아가 단장까지 위험한 지경에 빠트렸어도, 크로커스 기사단원들은 별다른 비난조차 하지 않았다. 동료를 몇 잃고서도, 그들은 그저 쓴웃음을 지으며, 살아있으니 됐다, 라고 말할 뿐이었다. 그 뒤로 하얗게 떠오른 소녀가 말없이 서 있었다. 그녀의 가슴 위로 푸른 빛의 옥석이 은은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크로커스 기사단이라 이름한 사내는 이 땅 위에 고작 둘 뿐이었다.
슈발만, 그리고 란더스.
그녀가 결사에게 배반하였을 때, 자신이 느꼈던 고통과 동일한 것을 '그 남자'도 느꼈으리라. 설마 이런 이유에 기인한 일이라고 생각이나 할 것인가. 이러한 연유였다고, 나는 너에게 전할 이야깃거리가 생겼다. 더불어 그녀의 마지막은 그토록 고고한 모습이었다고, 그 순간 란더스가 지을 표정을 도무지 상상할 수 없었다. 저를 이곳으로 인도한 까닭도, 그가 형제같던 기사단을 배반한 까닭도 슈발만은 알지 못했다.
그런데도, 생경한 느낌이 든다. 가족을 송두리째 비셔츠 족에게 잃었던 그 날로부터 슈발만은 천애고아로 혈족도 없이 이 땅 위에 홀로 남았다고 생각했다. 아무런 조건도 없이 의지할 수 있는 가족은 그 누구도 남지 않아, 주변엔 그저 타인일 뿐, 그들을 믿고 의지하면서도 슈발만은 때로 피부 위로 서늘함을 느꼈다. 아무렇지도 않게 체온을 맡길 수 있는 가족을 소년 시절에 잃었다. 성인이 된 뒤로 여러 사람들에 둘러싸여 잊고 말았지만, 어린 시절에는 온 몸으로 마치 겨울 바람을 닮은 외로움을 느끼곤 했다.
피를 나눈 것이 가족이고 형제라면, 그렇다면 너의 존재도 그렇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심정에는 거부감부터 들었다. 과거엔 존경하고 친애하는 상관이자 동료였다고 해도, 지금에와서 그는 배반자에 지나지 않았다. 자신이 사랑하던 모든 것을 송두리째 앗아간 자였다. 가슴 깊이 자리잡은 불신과 증오를 가벼이 떨쳐낼 수 있는 날은 결코 오지 않으리란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러나,
슈발만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실로 기이한 기분이었다.
어깨 위로 따스한 온기가 내려앉는다. 그것인 기실, 환상에서 비롯한 감각일 터였다. 마치 따스한 위로을 안기듯 꿈처럼 감싸안았다. 그녀는 지키고 싶었던 사랑스런 존재이자, 고통 속에 모두를 품어 안았던 어머니였다. 마지막까지 그녀는 자신이 사랑하던 것들을 끝내 놓지 않았다. 그녀의 피를 이어받아 크로커스 기사단이라 이름하였다. 그들은 이제, 이 땅 위에 외로이 둘 만이 남아있었다.
한 사람의 피를 이어받아, 그 피가 몸 안을 흘렀다.
본래는 느낄 수 없을 몸 안의 따스함이 손바닥에 고여, 소중히 그러쥐었다. 차마 부정할 수 없었다. 그 온기는 성녀가 그에게 베푼 것이었으므로.
당신은 혼자가 아니예요,
얼핏 그녀의 다정한 속삭임을 들은 것 같았다.
그런데 이대로 되면 그...ㄱ..ㅊ.....ㅋ.......ㅇ>-<
캐붕. 이럴 리 없습니다. 우리 발만이는 그렇게 머리 복잡한 애가 아닐 거라 믿어요. 그런데, 진짜 무심결에, 얼핏, ...응? 왜 그러지?? 싶을 수도 있지 않을까. 어, 음. 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