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그런 거 좋아해요.
이 두 사람에게 과연 무슨 일이 있었을까, 이야기를 더듬어봐서 감정을 짜맞추고 현재에 벌어진 일들까지 다 아우를 수 있도록 스토리 안에 있는 구멍을 메꾸는 거. 그래서 이 내용을 진즉에 구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언제 시작했더라, 문서 작성 일자를 보니 6월 24일이네요.
겨우 이걸 한 달이나 붙들고 있었어. OTL
계획으로는 소년기 한 편, 기사 시절 어떻게 어긋나게 되었는지에 대한 거랑, 5년 전 그 사건까지 하면... 아마 전체 두 세편 정도? 대강 어떻게 끌고 갈 건지 방향이나 사건 등은 다 정해뒀는데 왜 이렇게 글이 안 풀리는지 모르겠어요. 이건 꼭 쓰고 싶은데, 이거 뒤에 현재 시점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들 쓰고 싶은데. 제발 좀 써지라고. /짤짤 이런저런 구조같은 것때문에 내내 고민하다가, ....아ㅠㅠㅠ 진짜 언제 쓰지. 이거 말고도 쓰고 싶은 거 많은데.
그래서 그간 폐기한 도입부라도 아까워서 올려봅니다.
그냥 블로그에나 올리지, .....저장소 개념인 홈페이지에는 도저히 못 올릴, 좀, 그런. 열심히 쓰긴 했는데 내용 왜 저래OTL 무슨 판타지도 아니고, 2차 창작은 더더욱 아닌 것 같고, 용자물 같아서 손발이 오글거리기도 하고. 어쩐지 좀 지루한 것도 같고. 그래도 대충 짜 본 설정은 저렇구요. 음, ......다른 것보다 설득력만 있다면 좋겠어요. 란더스랑 슈발만, 두 사람에게 아마도 이러한 과거가 있었을 법 하다고.
아무튼 언젠가, 꼭, .....완성본 올리고 말거예요. 이글이글. 이것만은 꼭 쓰고 취직 한다ㅇ>-<
그 해의 토너먼트는 다른 해와 달리 사뭇 이상한 기류가 흘렀다.
영지 내 기사단에서는 매년 기사 수련생이란 이름으로 일정한 나이의 소년을 입단시켜 그들을 가르치곤 했다. 각 마을에서 수십 명의 소년들이 몰려들면, 그들을 선발하고 수준을 파악하기 위하여 조촐한 토너먼트를 열었는데 어릴 적부터 꾸준한 훈련을 받았다고 해도 보통은 체계적이지 못하거나 실전 경험과는 거리가 멀었던 탓에 소년들은 대개 미숙한 실력을 보이곤 했다. 때문에 그들을 선발하러 온 기사들도 더러는 낄낄대며 보는가 하면, 얼마는 지루하여 딴청을 피우는 등 가벼운 분위기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 해의 토너먼트는 달랐다. 아마도 세 네 번쯤 전투가 진행된 뒤의 일이었을 것이다.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린 뒤, 고작 세 번 정도 합을 주고받았을 뿐이었다. 힘있게 부딪친 검 중의 하나가 하늘을 향해 높이 날아 올랐다. 검을 놓치고 망연자실하게 제 손을 바라보는 소년의 앞으로 이내, 묵직한 소리와 함께 검이 떨어져내렸다. 확실한 패배였다. 그 즈음, 시험관은 승자의 이름을 분명히 입에 담으며 승패를 알렸다.
란더스.
[ …어이, 저거. ]
[ 왜, 뭐야. 무슨 일 있었어? ]
누군가는 휘익, 하고 휘파람을 불었다. 눈썰미가 좋은 기사들은 란더스의 실력을 한눈에 눈치채었다. 간혹 토너먼트 시절부터 두각을 드러내는 소년이 있었으나, 그 실력이 이미 정식으로 기사 작위를 받은 이들에 필적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이름이 뭐라고? 아하, 란더스? 그런 식의 수군거림이 기사들 사이로 퍼져나갔다. 기사들 중 상당수가 소년이 속한 가문이 어떤 곳인지 알고 있었다. 저 녀석이라면, 하고 웃으며 그때까지만 해도 적당히 수긍하는 정도에서 그쳤더랬다.
아마 그 뿐이었다면 그 해 토너먼트의 분위기가 일변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 뒤로, 다섯 번 쯤 더 대결이 진행된 뒤의 일이었다.
그 소년 역시, 오직 세 합 만이었다. 상대 역시 검을 놓쳤다. 란더스만큼 확실한 승리였다. 그러나 란더스와 달리, 소년의 이름은 낯설었던 까닭에 그 때에는 아마도 소년이 운이 좋았던 것이라 여겼다. 뭐야, 대체 얼마나 약한 녀석이길래 세 합만에 지는 거야. 그것도 검을 놓치다니 부끄럽군. 상대한 녀석 이름이 뭐라고? 그 녀석은 아무래도 수련생 자격도 얻기 힘들겠는데. 그런 식으로 가벼이 떠든 말들은 이내 깨끗이 부정당했다. 소년의 다음 상대는, 상당히 유명한 기사 가문의 자제로 실력마저 근방에서 상당히 유명한 자였다. 과연 이번엔 단번에 이기기가 힘겨웠는지 합을 열 몇 번쯤 주고 받았다. 그러나 이윽고 상대의 힘찬 공격을 가볍게 미끄러뜨린 소년의 검은 확실하게 상대의 목을 겨누고 있었다. 소년의 승리였다.
그 때에는 그 자리에 있던 모든 기사가 소년의 실력을 확인했다. 소년은 단순히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그 누구도 더는 말할 수 없었다. 상당한 힘으로 상대를 밀어붙이는 것으로도 모자라, 아직 투박한 기색이 남아있으나 유려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움직임으로 현혹까지 시키는 것을 모두가 보았다. 저 정도라면 자신들마저 이길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것이 올해는 벌써 두 명 째였다.
승리를 알리는 소리가 기뻤던 양, 붙임성있게 웃으며 검을 갈무리한 소년은 석양빛을 닮은 붉은색 머리칼을 지니고 있었다. 이윽고 소년의 이름이 대련장 위에 울렸다. 슈발만, 이라고 했다. 그 순간부터 토너먼트는 단숨에 수련생을 선발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어긋나, 두 소년 중 누가 얼마나 더 우수한 성적을 거두는지 겨루는 자리로 바뀌었다. 두 소년이 마땅히 맞붙게 될 결승전은 앞으로 이틀 뒤로 예정되어 있었다.
[ 슈발만, 이라고? ]
[ 그렇다니까. 너만큼 실력이 대단하다고 오늘부터 벌써 소문이 자자해. 다들 웃으면서 보다가 그 녀석이 싸우고나니까 눈빛이 변하더라니까? ]
수련생의 숙소는 2인 1실이었다. 선발 과정을 거치는 중에는 간단히 이름 순으로 숙소를 배정한 듯 했다. 저와 같이 L로 시작하는 이름을 가진 소년은, 란더스가 대강 몸을 씻고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소란스레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란더스는 냉정한 눈으로 소년을 위 아래로 훑으며 소년이 그런 식의 태도를 보이는 까닭을 가늠해보았다. 그는 들떠 있었다. 아마도 다른 수련생과 달리 상당한 주목을 받고 있는 란더스와 함께 방을 쓰게 되었다는 게 마음에 든 모양이다. 목 뒷부분을 덮고 있는 갈색 머리칼에 뭍은 물기를 털어내며, 란더스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어딘가 관심없다는 투였다. 그러나 그런 것쯤 상관없다는 듯, 그 녀석은 아랑곳하지 않고 란더스 옆에 붙은 채 마저 떠들었다.
[ 솔직히 말하면 좀 재미없게 됐어. 너랑 그 녀석 덕분에, 우리는 무슨 꿔다 놓은 보릿자루도 아니고 말이지. 기사들이 흥분한 걸 보니까 그만큼 대단한가도 싶지만, 란더스, 너는 누가 이길 것 같냐? 너 말이야,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
[ …당연한 거 아닌가. ]
[ 헤에, 꽤 자신만만하네? 하긴, 그 녀석 시골 출신인 것 같던데. 성도 들어본 적 없지? ]
흘깃, 냉정한 시선이 소년을 향했다가 이내 거두어졌다. 여차저차한 사정으로 가문이 몰락하여 지금에 와선 수련생을 거쳐 기사가 되어야 하는 처지라 해도 란더스는 꽤 내세울 만한 가문의 장자였으나, 그런 것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일은 경멸했다. 자신감을 보이는 것은 그런 류의 혈통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이제껏 들여온 노력을 그 누구도 이길 수 없을 거란 신뢰 때문이었다.
처음부터 확실한 승리를 거두어 주목받아야만 했다. 그 누구와 비견할 수 없을 만큼 우월한 능력을 갖췄다는 것을 우악스럽게 뇌리에 집어넣듯 각인시켜야 했다. 기사 수련생이라고, 그깟 지위 란더스에겐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지금이야 어엿한 성인으로서 인정받지 못하는 나이인 까닭에 이렇게 머물러 있을 뿐이지만, 그것이 가능한 순간이 되면 자신은 그 누구보다 최고의 자리를 이 손 안에 거머쥘 것이다. 마치 자학하는 것만 같았던 이제까지의 노력은, 모두 다 그를 위하여 예비한 것일 뿐이었다.
이 몸에 흐르는 피 따위 과거에도, 앞으로도 그저 자신의 지위를 확립하는데 조그마한 보탬이 될 뿐이라고, 그러니까 저와 함께 주목받은 녀석도 그저 저보다는 조금 덜한 정도로 노력을 한 결과일 뿐이라 여겼다. 그렇다면 저는 그것을 존중해야만 한다. 그러나 너는 나만큼 목표를 위해 달려오진 못했을 것이다. 그것은 오직 나만이 할 수 있었던 일이니까.
오직 그것만이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는 이유였다.
단단한 갑주를 걸친 두 기사는 회랑을 걷고 있었다. 기사단 숙소를 둘러 이어지는 회랑은 끝이 아득할 정도로 길었다. 막 마상훈련을 마친 참이었다. 서로 이런저런 점이 좋았다며 가벼운 사담을 나누고 있었는데, 문득 한 기사가 이어나가던 말을 끊고는 시선을 앞으로 고정시켰다.
[ 무슨 일이야? ]
하고 물으며, 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길 방향이 꺾어지는 즈음에서 누군가 이 쪽으로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저희들처럼 두 사람이었다. 아, 하고 뒤늦게 발견한 기사는 탄식을 흘렸다. 저 녀석들, 하고 슬쩍 웃는다. 그간 거쳐왔을 훈련을 증명하듯 딱 벌어진 체격과 다르게 어린티가 역력한 소년들은 이내 이쪽을 발견하고 고개를 꾸벅 숙였다. 기사단 숙소에 외부인 출입은 금지되어 있다. 이들은 어디까지나 내부인이었다.
[ 오늘도 둘이서 대련하고 오는 길이냐? ]
혼란스러운 시대였다. 각지에서 내려지는 신탁은 도저히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 있었고, 안정된 환경을 구하는 것 또한 신의 자비에 기대야했다. 이 시대에 믿을 수 있는 거라곤, 미미하더라도 그나마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조그마한 힘 뿐이었다. 그것은 한 영지를 다스리는 영주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여서 이 곳에서는 좀 더 훌륭한 기사단을 만들어내는 데 열중하고 있었다. 이 소년들은 그를 위한 토대였다.
기사단에서는 매년마다 일정 나이 이상의 소년들을 모집하여 그들을 직접 가르치고 있었다. 성인이 되면 실력을 검증하여 정식으로 기사 작위를 내리고, 그들이 기사가 되기 위하여 배웠던 그 장소에서 바로 기사로서 살아가게 된다. 두 소년은 올해 열 다섯살로 그러한 목적을 위하여 함께 달리고 있었다. 붉은 머리칼을 지닌 쪽은 슈발만, 갈색 머리칼을 지닌 쪽은 란더스라고 했다.
곤란한 듯 그저 멋적은 웃음만 지어보이는 슈발만을 지그시 바라보던 기사는 이내 피식, 웃고는 손을 들어 그의 짧은 머리칼을 헝클어트렸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란더스는 드물게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이 쪽을 보고, 슈발만은 으아악 비명을 질렀다. 저희들보다 열 살은 어린 녀석들이었다. 뭘 하든 귀여워 보이지 않을 수 있겠냐만은.
[ 적당히 해라, 이 녀석들아. 힘들지도 않냐? 이거 설마 다 땀이야? ]
[ 그렇잖아도 씻고 오는 길입니다. ]
[ 다행이군. 손 씻으러 가야하는 건가하고 걱정했다. ]
그리고선 둘이서 킬킬 웃는다.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던 다른 기사는 이내 아아, 하고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는 올해부터 수련생들의 훈련을 맡고 있었다. 신입생들이 입단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새 친해지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터였다.
[ 자칫하면 저녁시간 늦겠다. 쫄쫄 곯은 배 움켜쥐고 자고 싶지 않으면 어서 뛰어, 이 녀석아. 너희들 나이에 그 정도면 됐지, 훈련도 몸 생각하면서 적당히 해. ]
[ 네, 알겠습니다. ]
[ 란더스, 너도 마찬가지다. ]
[ 예. ]
나란히 히죽 웃는 모습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똑 닮아 있었다. 두 기사는 언뜻 그 모습이 기이하다고 느꼈다. 쫓아보내듯 엉덩이를 발로 차는 시늉을 하자, 어이쿠야 하며 뛰어가는 슈발만 뒤로 란더스가 따랐다. 두 소년의 모습은 나타났을 때처럼 회랑의 꺾어진 길 너머로 금세 사라졌다. 그 모양을 두 기사는 잠자코 지켜보고 있었다.
[ 란더스랑, 슈발만이라고? ]
[ 음. ]
[ 이번에 새로 들어온 수련생이지? 왜, 저번에 토너먼트에서 맞붙었던. ]
[ 그 경기 내가 직접 봤지. ]
갑작스레 그의 얼굴 위로 농도 짙은 쓴웃음이 스며 들었다.
[ 상당한 실력이었다. 둘 다 실력만으론 지금 당장 기사작위를 받아도 부끄럽지 않을 거다. ]
[ 그 때 이긴 게 아마……. ]
[ 그래. 대체 언제 저렇게 친해진 건지 알 수가 없어. ]
걷지, 하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여 천천히 동료의 뒤를 따랐다.
[ 란더스 쪽이야 워낙 혈통좋은 놈이라고 치고, 슈발만이란 녀석은 어디서 튀어나온 거야? ]
[ 산간지대 마을 출신이라더군. 적당히 먹고 살만하긴 했던 모양이지만, 의외의 발견이긴 하지. ]
[ 말하자면 왕족과 촌놈인가. ]
[ 한쪽은 패가망신한 쪽이라 해도 말야. ]
이런 식의 대화는 즐기지 않았다. 두 기사는 동시에 쓴웃음을 지었다.
[ 어쨌든 우리로서는 좋은 일 아닌가. ]
[ 뭐, 두 녀석 다 장래가 기대되긴 하니까 좀 더 지켜봐야지. ]
두 기사에게도 회랑의 끝이 가까워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