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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분들의 삶에 바치는 감사, 워낭소리

워낭소리를 보고 왔습니다.
'감사'라는 말이 이처럼 가볍게 느껴질 수 없습니다. 그 정도 단어로는 부족한 것만 같은데, 그 외에 어떤 단어로 이 마음을 표현해야 할 지 모르겠어요. 애틋함, 사랑, 죄송함, 존경, 감사, 그리움, 온갖 복합적인 감정이 한데 섞여서 영화의 마지막 장면 즈음에 눈시울이 시큰해지는 것을 억누를 수 없었습니다. 아니, 이미 팜플렛을 본 순간부터, 영화가 시작되어 지독히 익숙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을 때부터 이미 눈시울은 뜨거워져 있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이러한 부름에 저는 대체 어떠한 마음을 담아야, 솟구쳐 오르는 이 감정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워낭소리
감독 이충렬 (2008 / 한국)
출연 최원균, 이삼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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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름진 얼굴, 살갗이 앙상한 뼈에 달라붙은 마른 다리, 끙끙대며 아프단 소리를 내뱉으면서도 끊임없이 들로 일하러 가는 것을 멈추지 못하고, 이제 나이도 드셨으니 그만 일하시라 말씀드리면 그래도 사람이 일해야지 못 쓴다고 그렇게 말씀하시는 영화 속의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주고받으시는 대화는 제가 익히 들어온 것이기도 했습니다. 전북 어느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계십니다. 사진으로 찍어놓으면, 진정 아름다운 풍경이예요. 어린 시절부터 방학 때면 내려가 그 풍경을 실컷 만끽하곤 했습니다. 뻐꾸기 소리, 개구리 소리, 풀벌레 소리, 바람이 불면 풀잎들이 사락거리는 소리가 한데 들리고, 어린 시절부터 차곡차곡 쌓아져온 기억으로 저는 어렴풋이 알고 있습니다.

 제가 나이를 먹는 동안, 할아버지와 할머니 두 분은 천천히 늙어오셨습니다.

 어릴 적에는 그렇게나 할아버지가 무서웠어요. 아버지 말씀에 따라 시골에 찾아갈 때면 할아버지 옆자리에 누워 자곤 했는데, 할아버지는 좀처럼 웃지도 않으시고 저희에게 말도 걸지 않으시고, 밥 먹을 때면 밥풀 하나라도 남기지 말라고 혼을 내셨어요. 그저 새벽 일찍 푸르스름한 빛조차 깔리지 않은 때부터 나가셔서 제가 아침에 일어나고 나면 아침이나 잡수러 들어오셨다가 다시 일 하러 나가시고. 이따금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일하시는 논이나 밭으로 놀러나가면 점심 때 즈음엔 할머니가 집으로 향하셔서는 새참을 들고 오십니다. 막걸리 한 사발에 빵 몇 개, 논에 물을 대고 농약을 치고, 여름이면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하시던 할아버지께선 2008년 초, 뇌종양이셨던가, 대장암에 겹쳐 걸리신 병으로 지금은 다리를 절으십니다. 당연히 일도 못하십니다. 그토록 부지런하시던 할아버지께선 지금은 그저 방 안에 누워계시거나, 앉아계실 뿐이예요.

 주름진 손에 마른 다리.
 부지런히 움직이며 잠시도 몸을 가만히 놔두질 않으시는 두 분은, 그게 당연한 일인 것처럼 그렇게 평생을 보내셨어요.
 비단 제 할아버지, 할머니 뿐일까요.

 영화 속의 두 분도, 끙끙대며 앓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고된 일을 하는 삶이 당연하다 여기시고 그렇듯 평생을 살아오셨는지도 모릅니다. 예전에는 소 한 마리가 굉장히 큰 재산이었단 얘기를 들었어요. 처음으로 소를 사서 집으로 돌아오시는 기분은 어땠을까. 코뚜레를 걸고, 일을 가르치고, 밭을 갈고, 논을 매고, 자그만치 9남매를 우직히 일하는 소와 함께 묵묵히 키우셨겠죠. 몸이 닳도록 일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고는. 아무리 고되다고 입으로 말해도, 새벽이면 일어나 신을 신고 분주히 움직이시던 저의 할아버지, 할머니처럼.

 바로 그 분들의 부지런함으로, 저는 이렇듯 따뜻하게 먹고 살고 있는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힘겨워하는 소의 모습이, 불편한 다리로 아프다, 아프다, 말하면서도 밭으로 나가고마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안타까웠어요.
 영화가 끝난 뒤, 소가 불쌍하다며 눈물 짓던 분의 모습도 보였는데 저는 그 소의 삶이 우리네 할아버지, 할머니의 삶과 똑 닮아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어가 다른가요. 우직히 일해왔어도 기계에 대체될 수밖에 없고, 바깥에 나가보았자 대접도 못 받고, 그저 어서 팔아치우라고 말만 들을 뿐인 소의 모습과 자꾸만 닮아있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체 이 부채를 어떻게 갚아야 할까.
 아니, 갚아야 한다는 생각조차 이제껏 하지 못한 것은 대단히 큰 잘못이 아닐까.
 지금도 시골에서 본인이 살아오셨던 대로, 굽은 허리를 두드리며 일하고 계신 할아버지, 할머니 분들을 외면해왔다고밖에 말할 수 없지 않을까. 그 분들이 계시지 않았다면 나의 아버지도, 나도 없었을 텐데. 평안한 삶은 불가능한 일이었을 지도 모르는데.


 소가 마지막으로 남겼다던 자욱한 장작더미,
 마지막 발걸음을 떼는 길까지 차 트렁크가 묵직하도록 창고에서 뭐든 꺼내주시는 모습이 오버랩되었어요.
 그렇게 무어든 가진 거 다 퍼주신다고, 그 모든 게 그 분들께 다시 되돌아오는 것도 아닌데.
 모든 자식이 그러한 사랑에 감사하고 애틋해하며 당신들을 그리워하는 것도 아닌데.
 그저 당신들께서 굽은 허리로 일하신 수확물을 조금이라도 더 가져가려도 애쓰는 자식들마저 있는데.


 시골에 계신 할아버지, 할머니가 무척 그리워졌습니다.
 얼마나 더 제 곁에 계실 수 있을까요. 아직 당신들의 사랑을 갚는 것을, 시도조차 못하였는데.

 딸랑, 딸랑하고 울리던 워낭소리는 이렇듯 시대가 바뀐 지금에는 다시 듣지 못하겠지요.
 그 분들의 곁에서 웃으며 그 분들의 사랑을 느낄 날도 얼마 남지 않았을 지도 몰라요. 몇 번이라도 더 찾아뵈어야겠습니다.



그리워, 제가 태어난 곳도 아닌데 제 고향이라 서슴없이 말할 수 있는 그 곳의 풍경 사진을 올려 봅니다.
2년 전이던가, 가을에 찍은 풍경입니다.

두 분께서 몇십 년이고 삶을 꾸려오신 곳이예요. 소 한마리 들이지 못할 정도로 가난하시던 두 분이, 그토록 열심히 일하셔서 집도 깔끔히 꾸며놓고 계십니다. 어렴풋이 예전 부뚜막이며 마루가 있던 시절이 기억납니다. 지금은 어느 정도 현대식 건물이예요.





 개인적으로 아버지께 보여드리고 싶은 영화였습니다.
 제가 느끼는 것보다, 아버지께서 느끼시는 게 더 크겠지요. 영화를 보는 내내 켜켜이 쌓일 수밖에 없었던 이 부채감이, 아버지께선 더욱 더 강렬하실 지도 몰라요. 그토록 부모님을 위하시며, 고향에서 효자 소리를 듣고 계신 아버지라고 해도.

 그토록 근면과 성실, 헌신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살았던 시대는 다시 오지 않겠지요.
 그것이 현재의 우리를 만들어내었는데도 불구하고, 서서히 잊혀질 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의 역사를, 풍경을 그대로 화면에 담아 준 이 영화에도 고마움을 표하고 싶습니다. 워낭소리를 떠올리면, 적어도 저는 잊지 않게 되겠지요. 그 정도만으로는 부족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