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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스토리오브마이라이프 120323 (이창용/고영빈)


  언제였지. 재작년에 이어 작년에 시작하자마자 공연을 보러 갔었다.
  그날 공연한 배우는 카이/이창용. 아무래도 내 머릿속에는 최애페어였던 류정한/이창용의 환상적이었던 막공에 대한 기억이 워낙 깊게 남아있었던 데다, 여차저차 이런저런 이유로 그 날의 공연은 그다지 감동적이고 만족스러운 공연은 되지 못했다. 그래서 한동안 스옵마를 보지 않았고, 중간에 엘리 몇 번. 그러다 문득, 스옵마가 그리워져 고작 일주일 전에 충동적으로 예매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류창 막공 때 느꼈던 감동과 전혀 다른 종류의 감동을 맛보고 돌아왔다. 대만족이었다는 뜻이다. 톰과 앨빈이 그렇게 서로를 소중히 여기고, 안타까울 정도로 위하다가 그야말로 사소한 뒤틀림으로 그런 비극적인 결과를 맞게 되었다는게 새로웠고, 매 순간 감탄하다 마지막 절정 부분인 눈 속의 천사들에서는 카타르시스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찡해오는 감동을 받았다. 아, 어떡하면 좋지. 이 사랑스러운 사람들을.

  고영빈의 톰은 진정 앨빈의 수호천사였고, 어리고 천진하고 상처많은 앨빈을 보듬어준다고 느껴질 만큼 듬직하게 느껴졌다. 그것은 '짜부시켜도 되는 쪼그만 벌레'에 이어 동네 양아치들에게 앨빈이 맞는 모습을 볼 때 더더욱 크게 와닿았다. 세상에, 정신 사나울 정도로 무대를 활보하는 앨빈을 끝까지 열정적으로 쫓아가는 톰은 처음이야. 그것도 정말 앨빈을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하는 기색이 가득한 얼굴로, 끝에는 마침내 앨빈을 보듬듯이 붙잡는 걸 보고 감동. T_T 앨빈도 그런 톰의 마음을 아는 듯이, 잡지 좀 보라는 톰의 말에 달래듯 '그거 줘 봐'하는데 이 두 친구들 뭐지. T_T 거기다 앨빈이 '내 목욕가운 가져갔어~!'하고 매달리니까 나만 믿으라는 듯이 어깨를 툭툭 도닥여줘. '목욕가운 돌려줘!'하는 톰은 단호해서 멋있기 그지 없었고, 그 뒤에서 나무에 매미 붙은 듯이 팔장 끼고 몸을 반쯤 내민 앨빈은 귀여워서 ㅠㅠㅠㅠㅠㅠㅠㅠ 아 ㅠㅠㅠㅠ 우리 앨빈이 보호받고 있구나 ㅠㅠㅠㅠㅠ 톰이 지켜준거구나 ㅠㅠㅠㅠㅠㅠ 싶었다. 친구의 순수함을 소중하게 생각했고, 정말 앨빈을 특별하다고 느꼈을 것 같은 톰이었다.

  그렇게 톰이 앨빈을 위해주고 사랑해주니까, 이거 이창용의 앨빈도 톰을 떠나보내는데 더 애달파하고 안타까워해서,

  나비를 부르며 환희에 차있는 톰을 바라보는 뒤의 앨빈의 시선이 (그저 조명 덕분일텐데도) 납빛으로 굳어있었다는 상투적인 표현 그대로 하얗게 새파래져있었다. 세상에, 나비가 그렇게 슬픈 노래로 느껴진 건 처음이야. 그런 식의 대비는 나중에도 나오는데, 인디펜던스 데이에서 앨빈은 환희에 차서 역시나 무대를 활보하는데 상대적으로 어두운 곳의 토마스는 부모님이라도 돌아가신 것마냥 가슴을 쥐어 뜯으며 자신의 곤란한 사정을 돌이켜보고 앨빈에게 잔인한 말을 던져야 하는 순간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었다. 

  앨빈 얘기를 하려다가 왜 또 톰 얘기를. ㅇ>-<

  어쨌든, 첫 번째 이별 때에는 톰이 등을 보이니까 그야말로 오열을 하듯 표정이 어두워진 채로 흐느끼던 앨빈이 톰이 돌아보자마자 억지로 웃음을 지어보이는데 ㅠㅠㅠㅠㅠㅠㅠㅠ 이러지 말라고 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이 배우님들아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누구 가슴 찢어놓을 일 있냐구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행복한 순간과 비극적인 순간의 대비가 너무나 명확해서 쓰라렸다.
  고향 방문, 처럼 행복한 순간엔 귀찮게 하는 앨빈에게 진심으로 짜증을 낸다기 보단, '아, 이 녀석을 대체 어떡하면 좋지ㅎㅎㅎㅎㅎ'하는 느낌의 톰. 그걸 아는 앨빈은 더 매달리면서도, 정말 거리를 두어야 할 때는 명확해지고, 이창용의 앨빈은 너무도 톰의 기억 속에 있는 뮤즈라는 느낌이 강한데, 서로에 대한 애정이 명확한 만큼 더더욱 빛나고 사랑스럽더라. 이것이 정말 톰의 기억이라면, 이만큼이나 앨빈을 사랑하고 아꼈었구나, 싶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위대한 도서관, 장면이 너무나도 묵직했다.

  톰은 단지 반발했을 뿐이었다. '이게 다야', 하긴 앨빈에겐 당연하다. 그동안 연락도 없더니 들고 온 송덕문이란게 기껏해야 시 한 쪼가리다. 위대한 시인의 명작을 존중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앨빈이 요구한 건 '톰의 글'이었고, 고영빈의 톰도 그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슬럼프에 억눌려 정말 글이 나오지 않았던 거고, 덕분에 그렇잖아도 높지 않던 자존감(수상 소감 말할 때 과하게 감격스러워한다)은 바닥을 치고 있는데 앨빈의 말이 그대로 상처가 된다. 소중하고 천진한 친구에게 오랜만에 듣는 말이 그런 식이고, 그 사실을 자신도 너무 잘 알고 있는 톰이니 격한 감정에 절대 내뱉지 않아야 하는 말을 하고 마는 거지.

  얜 필요 없었다구요!

  그 말을 내뱉은 직후, 그 후회어린 표정이라니.
  그 순간 미안하다고, 이런 말 할 생각이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그것이 두 사람의 아주 작은 틈, 서로를 소중히 여기는 만큼 돌이킬 수 없는 지점이 되고 말았다.

  아 ㅠㅠㅠㅠㅠ 진짜 ㅠㅠㅠㅠㅠㅠㅠㅠ 그렇게 서로 아끼고 사랑했는데 ㅠㅠㅠㅠㅠㅠ
  톰에게도 앨빈이 그랬고, 앨빈에게 톰도 그랬고, 본 페어는 많지 않지만 그 어느 페어보다 더 깊어 보이는데 ㅠㅠㅠㅠ 서로 너무 다정한데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이게 다야, 라고 말하는 순간 그래서 앨빈은 웃음이 웃음같지 않고,
  떠나기 전 약속할 때 그 손길이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다시 보러 가고 싶다. 이 페어로.
  근데 금요일밖에 없잖아? 난 지방민이잖아? 퇴근하고 달리면 아슬아슬하게 닿잖아? 공연장 도착하면 거의 50분, 화장실 잠깐 들를 시간밖에 없고, 공연 끝나면 10시 40분 차를 타고 달려 열두시 다 되어 집에 돌아와야 하잖아? 지나치게 강행군이야 ㅠㅠㅠㅠㅠㅠ

  내 본진인 창용앨빈이야, 매 순간 사랑스럽기 그지 없을 정도로 더욱 디테일해졌고,
  무엇보다 감탄한 것은 고영빈이라는 배우였다. 정말 톰이 저런 사람이었겠구나, 싶을 정도로 매 순간 자연스러웠다. 나비를 앨빈에게 보여주며 멋적어하는 행동 하나하나(코를 쓰다듬는다거나, 뒷머리를 매만진다거나) 그런 게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고영빈 톰은 직접 가서 봐야 한다. 음악만 들으면 그 가치를 알 수 없을 거야. 매 순간 변화하는 표정, 감정이 담긴 행동들, 그런 걸 어떻게 머리로 그려내겠어.


  정말 많이 치유받고 왔고, 아직도 그 감동에 시름시름 앓는다.
  오늘, 초등학교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내내 고생만 하는 것 같아 생각날 때마다 염려되고 마음이 아팠는데 정말 좋은 소식으로 연락이 왔다. 행복하다. 기쁘다. 스옵마를 보면 언제나 그 친구가 생각이 났다. 정말 잘 해야지. 유년시절의 내 친구를 그렇게 비극적인 형태는 아닐 지라도, 잃지 않도록. 현실의 흐름에 마구 떠밀려 멀어지지 않도록. 생각해보면, 초연 때에도 연락해야겠다고 생각했었지. 정말 이 공연이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