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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박쥐, 달콤한 멜로 영화로서


 다른 포스팅과 마찬가지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실, 그 무엇을 감상하든 자신이 볼 수 있는 만큼의 범위에서, 이해할 수 있는 만큼의 범위에서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이 진정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까닭에 이런 식으로 해석하고 있다고 밝히는 게 어쩐지 부끄럽기도 해요. 영화를 한 두번 더 감상한 뒤에 적고 싶었는데, 어쨌든 첫 감상은 이러했다고 적고 싶어서 몇 자 더 적어봅니다. 이대로는 박쥐에 대한 포스팅만 한 내댓개 나올 것 같습니다. 그만큼 제 마음을 확 휘어잡고는 놔주질 않아요.

 굉장히 매력적인 영화입니다. 시각적인 즐거움을 한껏 충족시켜줬어요.
 더불어 굉장히 달콤한 영화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오직, 단지 '신발'이란 소재 하나만으로도 그렇다는 걸 증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몇 번이고 반복하는 말이지만 제가 '박찬욱 감독'을 싫어했던 까닭은 단 하나입니다. 작품 내 인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지독히 싫었습니다. 냉정하고, 차갑고, 그것도 모자라 조소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 세계의 창조주로서 인물을 도저히 헤어나올 수 없는 늪에 빠뜨려놓고는 그것을 소리없이 웃으며 지켜보는 풍경이 떠올랐어요. JSA는 지극히 담담했고, '복수는 나의 것'에서는 냉정히 조소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올드보이'와 '친절한 금자씨'는 본 지가 오래되어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올드보이에서 맞닥뜨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식이 '외면'이라는 것도, '친절한 금자씨'에서 인간이란 존재가 자신의 분노를 해소하기 위하여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지 그것을 낱낱이 보여주는 것 같아 불편하고 불쾌했습니다.

 근데 왜 박쥐는 다를까, 왜 그리 편하게 느껴졌을까.

 화자가 두 인물을 보며 웃고, 낄낄대는 느낌이었던 건 맞아요. 그러나 본디 블랙 유머에 좀처럼 웃지 못하는 저입니다. 그런데도 보기 편했던 까닭을 돌이켜본다면, 그것은 아마 두 인물이 사랑스러워 보였던 까닭인 것 같아요.당근이죠, 라고 말하는 신부님은 부드러웠고 뱀파이어가 된 뒤에도 태주에게 신발을 신겨주던 모습에선 따스한 애정이 느껴졌고, 그들은 복잡한 상황에 맞물려 필연적으로 서로를 갈망하고 원할 수밖에 없었어도 그들의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은 웬일로 다정한 장면이 많았던 것 같아요. 질투를 표현하는 방식조차, 그 놀라운 힘으로 전봇대 하나를 넘어뜨리는 것 뿐이었고, 그것을 후에 다시 언급한 적조차 없어요.

 굉장히 다양한 시각으로 이 영화를 지켜볼 수 있는 건 옳지만, 멜로 영화로서 이 영화를 바라본다면 말이예요. 이런 표현이 우습다는 건 아는데, 굉장히 달달했던 것 같아요. 극단적인 상황만 살펴보더라도 강우에 대한 죄책감으로 서로에게 스트레스를 느낄 때조차, 무려 신부님이 걸죽한 욕까지 내뱉어내며 싸워댈 때에도 그 앞에 자리한 대사가, '나보고 귀엽다며'였단 말예요. 으아악OTL 꼭 '네가 먼저 날 좋아했잖아! 나보고도 멋있다고 하고! 근데 이제와서 뭐?! 내가 너한테 해준 게 얼마인데?!!'하는 분위기지 않아요?

 사실 중반쯤까지는, 상현이 진정 태주를 사랑하는 게 맞는지, 태주는 단지 자신을 이 세계에서 끌어내줄 상대라면 상현 외에도 아무나 붙잡을 수 있었던 건 아닌지, 그렇게 고민했습니다. 실제로 태주는 그 상황에서 자신을 끌어내 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아무나 상관없을 것 같아요. 그러나  상식 이하의 취급을 한 뒤에도 강우는 마냥 낄낄거리고 있을 때 손을 내밀어준 사람도, 자신이 어찌할 바 모를 정도로 답답한 심정을 폭발시키듯 달릴 때 자신의 신발을 내어준 사람도, 자신에게 처음으로 생일을 축하해준다고 말한 사람도, 자신을 지옥같던 세계에서 끌어낸 것으로도 모자라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부활'시켜준 사람도 상현이었습니다. 이 정도 기억이 쌓였는데 대체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상현에게 태주는 어떤 의미였는가를 생각하려면 좀 더 다른 지식이 필요할 것 같지만, 상현에게도 굉장히 절대적인 존재였으리라 생각합니다. 인간에 대한 연민, 본능적인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대상임과 동시에, 실제로도 지옥을 얻은 대신 그에게 쾌락이란 자유로움을 선사해준 존재이기도 하고, 게다가 자신이 피를 주어 탄생시킨 존재기도 해요. 그러고보니 그런 인터뷰를 읽은 것 같아요. 상현은 외로운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에겐 자신의 외로움을 채워줄 누군가가 절실히 필요했을 거라고.

 두 남녀가 그 어떤 타인과 도저히 바꿀 수 없을 정도로 '절대적인' 존재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면, 이보다 더 달달하고 절절한 멜로가 어디 있을까 싶어요. 네, 저도 쓰면서 거북함을 느껴요. OTL 아니, 이게 아닌데, 살인까지 저지르며 온갖 나락으로 떨어졌는데 달달하고 절절하다니, 이게 무슨 말도 안되는 얘기야.

 더불어 이 영화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온갖 순정적 코드는 사실 다 들어가 있어요! 어릴 적부터 알아왔던 사이, 절망 속에서 서로 구해내준 관계, 서로 손을 붙잡고 그야말로 지옥 속으로 빠져들어도 서로가 서로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관계였고, 무려 해돋이와 함께 같이 죽기까지 해요. OTL 근데 그 사이의 과정이, -이건, 뭐라고 해야 되나. OTL 하긴, 그러니까 송강호 씨도 하고 싶으셨겠지.



 정말 이렇게나 해석을 나누고 싶은 영화도 처음입니다. 보통 동생이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다보면 영화에 대한 해석이 대강 끝나곤 했어요. 근데 이건, 이렇게 생각해도 뭔가 아닌 것 같고, 저렇게 생각해도 뭔가 부족한 느낌이예요. 대체 이 많은 이야기들을 하나의 스토리에 어떻게 이렇게나 맛깔스레 집어넣었지?! 일관되게 감정선을 이끌어와, 그들이 걸어온 길을 설득력있게 풀어낸 배우들도 대단하고, 실은 이런 식으로 글을 적으면서도 제 부족함이 처절히 느껴져서 눈물이 납니다. 분명히 좀 더 다른 느낌이었는데 어떻게 논리적인 언어로 표현이 안 돼요.


 그래도 이 포스팅을 작성한 까닭은,
 신부와 유부녀, 이 얘기만 들으면 그토록 부적절해보일 수 없는 관계인데, 이런저런 상황에 함께 얽히며 도저히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운명적인 관계였으리라고, 그들의 성격과 성장배경, 처해진 사건 전부와 맞물려서. 무엇보다 마지막 장면이 너무도 서정적이었구요. 피를 뿝는 고래는 진짜, 영화 볼 당시에는 저게 뭐야, 하고 멍해졌더랬는데 지금은 웃음이 납니다. 그 바다, 정말 맛있어 보였을 거예요. 어라, 그러고보면 최후의 만찬을 눈으로나마 본 셈인가?

  서로가 서로에게 특별한 의미로 부여되던 바로 그 순간에 존재했던 신발이, 그들의 육체는 재로 화해 바람에 섞여 존재한 것조차 모를 정도로 사라졌는데, 오직 그 하나만이 대지 위에 남아있던 장면이, 지옥에서 보자던 상현의 말과 이대로 끝이지만, 그래도 즐거웠다고 말하던 태주의 말과 맞물려 좀처럼 지워지질 않습니다.

 이만하면 충분히 멜로물 아닌가요? 그것도 상당히 달달하고 처연한.
 현실적인 상황은 그들에게 일찍부터 의미가 없었을 테니까.


  어서 다시 보고와야, 이 포스팅에 잘못된 점이 있다면 통렬히 저 자신을 비웃어줄 수 있을텐데. 다시 볼 수 있는 건 월요일 즈음이 될 것 같아서 목이 탑니다.